우울증의 정의와 진단
«한낮의 우울»이 내게 조금 더 흥미롭게 다가온 이유는 저자인 앤드루 솔로몬의 진지하고 유려한 문장들 때문이다. 예일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로 활동했던 앤드루 솔로몬의 약력은 완성도 높은 문장들을 설명해준다. «한낮의 우울»이 전문 학술서로써 우울증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은 책에 불과했다면, 나는 분명히 이 책을 읽기를 주저했을 것이다. 하지만 앤드루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우울증을 정의 내리며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절망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한다. 우울은 그 절망의 심리 기제다. 우리에게 찾아온 우울증은 자아를 변질시키고, 마침내 애정을 주고받는 능력까지 소멸시킨다."
통상적으로 우울증은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여 다양한 인지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으로 정의 내려지고, 「정신장애의 진단 기준 및 통계편람 4판 DSM-IV」에 의해 진단된다. 앤드루 솔로몬은 그러한 통상적인 정의와 진단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울증의 진단은 우울증 자체만큼이나 복잡하다. ...... 자신이 우울증인지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잘 살피고 자신에게 귀 기울이고 자신의 감정들을 느껴 본 다음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 정신의학의 성경이라 할 수 있는 「정신장애의 진단 기준 및 통계 편람 4판 DSM-IV」에서는 아홉 가지 증상들을 나열해 놓고 그중 다섯 가지 이상이 나타나면 우울증이라는 부적절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 정의가 지닌 문제점은 완전히 임의적이라는 것이다."
앤드루 솔로몬이 우울증이라는 질병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소 문학적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독자로서 단언코 말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감상적, 직관적, 비논리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그가 여러 작가들의 문장들을 «한낮의 우울»에 인용한 것처럼, 문학에서 대다수의 작가들에게 우울증은 내면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그 작가들에게 있어서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앤드로 솔로몬이 우울증을 문학적으로 서술해내면서도, 그가 책을 내는 당시 최신의 정보와 학술 지식을 조사하고, 전문인을 인터뷰하여 우울증이라는 질병의 뿌리와 그 양상들을 방대하게 다루며 집필한 것은 이 분야에 있어서 하나의 업적을 남긴 것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것 같다.
우울증은 단지 "화학적 작용"인가?
앤드루 솔로몬은 우울증을 '단순한' 화학적 작용이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흉악하지만 그건 단지 화학적 작용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우울증을 단지 화학작용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환자가 자신의 자유의지 그리고 '완전한 자아'와는 별개로 뇌 안에서 화학작용이 제멋대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환자 본인의 책임을 설명 불가능한 화학 작용이라는 것에 덧씌우는 일이다.
하지만, 앤드루 솔로몬은 우울증은 내적 현실과 외적 현실의 연속선상 안에서 일어나며, 한 사람의 성격과 상호작용하는 질병이라고 설명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치료를 시도해야한다 말한다.
우울증과 통계수치
앤드루 솔로몬이 소개하는 통계 수치들은 아래와 같다. 이 책이 2001년에 쓰였다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 미국인의 약 7%(1900만 명 정도)가 만성적인 우울증에 시달린다. 이 중 어린이가 200만 명을 넘는다. (현재는 더 늘었다. 미국 어른들 중 8.4%(2100만 명 정도)가 주요 우울장애에 시달린다. *참고: https://www.nimh.nih.gov/health/statistics/major-depression)
- 전 세계의 질병 부담률 2위가 우울증이다.
- 중증 우울증 환자중 50% 만이 치료를 시도하며, 그 중 95%가 1차 진료 기관의 내과의를 찾는다.
- 환자가 본인이 우울증임을 인지할 확률은 (미국인 기준) 약 40%에 불과하다.
- 예전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15%가 자살을 하게된다.하게 된다. 가벼운 우울증을 포함하는 조사에서는 2~4%가 우울증의 직접적인 결과로 자살을 하게 된다.
- 선진국들에서, 특히 어린이들 사이에서 증가 추세이다.
- 우울증 발병 연령은 점점 앞당겨져 스물여섯 살께에 처음 발병한다.
- 우울증 인구의 6%만이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 그 중 대다수가 부작용으로 인해 약물 치료를 중단하게 되며, 이를 감안하면 1~2%만이 최적의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통계 수치는 숫자일 뿐이라고 하지만, 대략적인 흐름은 무시할 수 없다는 면에서, 위의 통계 수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우울증이 현대 사회의 개인의 삶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도 확인해볼 수 있다.
고통과 우울증
첫 번째 챕터를 마무리하면서 앤드루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고통받는 능력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평생 막연한 슬픔 속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고통과 심한 우울증은 다르다. 사람은 격심한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으며 살아남을 수 있다. 내가 근절하고자 하는 것은 우울증으로 인해 살아 있는 시체처럼 살아가는 것이며, 이 책도 그런 목적을 위해 쓰인 것이다."
앤드루 솔로몬은 믿고있다. 우울증이 치료 가능한 질병임을. 그 질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분명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그는 긴긴 글을 써 내려간 것이다. 이로부터 이어질 내용은 앤드루 솔로몬 자신이 어떻게 우울증으로 정신적 몰락을 경험했는지,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정공법과 대안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환자들의 경험을 다루고, 중독, 자살과의 연관성,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우울증을 살펴본다.
p.s.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나머지 부분들도 정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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