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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 «여름의 끝»,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여운

by 한낮의꿈 2022.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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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 / 윌리엄 트레버 / 한겨레출판 (원문기준; 2009)

「여름의 끝」 ,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여운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마음속 깊이 따뜻한 돌멩이 하나가 놓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돌멩이는 좀처럼 식지 않고, 그 온도를 유지한 채 자리를 지킨다.

여름의 끝의 주요한 인물인 엘리와 플로리언은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둘 사이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고아원 생활을 했던 엘리에게는 남편이 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끼게 되고, 그로써 그녀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사랑의 감정이 자신이 들어왔던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플로리언은 유산으로 받은 초라해진 저택을 뒤로한 채 라스모이로 와서 엘리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 감정은 사랑으로 바뀐다. 하지만 그는 그 나름대로 떠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 밖에도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가 낙태를 경험한 코널티 양, 엘리의 남편이자 농부인 딜러핸, 과거를 되풀이해서 살고 있는 오펀 렌 등의 인물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트레버가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마치 파도가 밀려들어와 모래사장의 흔적을 만들고 지우는 것 같다. 한 여름,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어디에도 이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달려있지 않고, 그저 이야기를 할 뿐인 것 같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 원래 세상이 그런 거라고. 그렇게 생성되고 사라지고를 끊임없이 반복되는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 사실을 납득해가면서도, 내 마음속 어딘가에는 따뜻한 돌멩이 하나가 계속해서 나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것 같다.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뉴요커에 실린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 - 「피아노 선생의 제자

내가 윌리엄 트레버를 알게된 것은 2017년 6월 경이었다. 뉴요커 잡지 2017년 6월 26일 주 호에 실린 트레버의 미공개 단편 피아노 선생의 제자 첫 문단이 나를 사로 잡았다.

"브람스 곡 어떠니?" 그녀가 말했다. "브람스 곡으로 한번 쳐볼 테니?"
나이팅게일 선생과의 첫 개인 교습을 하던 소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트로놈을 응시하며 마치 그 침묵이 마음에 든 듯 작게 웃음 지었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치기 시작했고, 그 첫 음을 들었을 때, 나이팅게일은 눈앞에 재능 있는 아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시작이었다.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선, 나직하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나는 그 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내가 찾아오던 느낌의 소설이었다. 관조적 어조, 따뜻하면서도 중립적인 뉘앙스의 간결한 문장들, 그리고 블라인드니스 Blindness를 일깨우는 결말.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느끼던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아주 조금 이해한 것이 바로 그 단편에 담겨있었다.

윌리엄 트레버, 그리고 내가 그에게서 배운 것

윌리엄 트레버 William Trevor는 2016년 11월 20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내가 뉴요커에서 읽게된 그의 단편은 뉴요커에 단편을 전속적으로 투고해오던 트레버의 미공개 소설을 사후에 공개한 것이었다. 많은 팬들이 그 미공개 단편을 읽고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음에 기뻐했다. 그의 미공개 원고들은 이따금씩 뉴요커에서 같은 방식으로 공개되어오다가, 얼마 전에 「마지막 이야기들 (Last Stories) 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현재 활동 중인 많은 단편 작가들이 그의 단편과 문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이윤 리(Yiyun Lee)와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가 공개적으로 윌리엄 트레버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들은 그들에게 있어 작가가 되는 디딤돌이 되는 역할을 하고 그들에게 지침서 역할을 했다고.

나 또한 첫 번째 단편 소설 습작을 그의 글을 읽고 난 뒤 쓸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내몰아서 글을 쓰게 만들었다. 지금 이 시간을 빌려 그 힘이 무엇이었는지 한번 되돌아보고 싶다.

하나는 삶을 슬쩍 바라보는 시선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삶에 그 자신은 한 발자국 바깥에 서있는다. 현시점에 출판되는 많은 소설들이 서술자에게 과몰입되어있다. 그것이 1인칭이든 3인칭이든 과하게 몰입되어있고, 과하게 서술자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에 반해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들은 한 발자국 물러나 있다. 감정이 절제되어있다. 감정이 절제된 시선이 매력적인 이유는 나 자신의 감정과 삶에서 한 걸음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면 삶에 너무 열정적이고 과열되어있어 나 자신에게 빠져서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다른 하나는 그의 문장이다. 「여름의 끝」 첫 문단이 그렇다. 영어로 보면 조금 더 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On a June evening / 어느 유월의 초저녁
some years after the middle of the last centry / 지난 세기 중반이 몇 해 지난
Mrs Eileen Connulty passed through the town of Rathmoye: / 아일린 코널티 부인은 라스모이 마을을 통과해 지나갔다.
from Number 4 The square / 광장 4번지에서 출발해
to Magennis Street, / 머게니스 스트리스를 거쳐,
into Hurley Lane, / 헐리 레인으로 빠진 후,
along Irish Street, / 아이리시 스트리트를 따라,
across Cloughjordan Road / 클럭조던 로드를 건너
to Church of the Most Holy Redeemer. / 구세주회 성당으로 갔다.
Her night was spent there. 밤은 그곳에서 보냈다.

위의 문단에서 마침표는 두 번 사용되었다. 그리고 아일린 코널티 부인의 죽음을 표현하고 있다. 단어들의 사용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있지 않다. 슬프다거나 애도의 감정적 단어는 단 하나도 없다. 부고 소식과 장소 그리고 시간을 표현했을 뿐인데, 이 단어들의 나열을 천천히 느린 호흡으로 읽게 되면서 장소와 전치사 구 사이의 리듬감이 부여되고, 시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리고 어떤 한 사람의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 죽음이 마을의 곳곳을 돌면서 이 단어들을 읽는 사이 마음에 스며든다. 그리고 어쩐지 숙연해진다. 사실적인 단어들의 나열만으로 이런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는 문장가는 정말로 세상에 몇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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