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신경 써온 일들을 물리치는 법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책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책의 프롤로그에서 장기하가 써놓은 것처럼.
"어쨌든 분명한 건 내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 써왔고, 또 그게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는 것이다. ......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에 대해 써보려 한다. 나를 괴롭혀온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해서 간단히 극복하거나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 같은 것은 나는 모른다.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마치 한 단어를 반복해서 되뇌면 그 의미가 불확실해지는 기분이 들듯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을 죄다 끌어내 써보는 것만으로도 그것들의 힘이 좀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기대는 하고 있다."
지나치게 신경써온 일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이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하고 물음을 던지면서. 그렇게 하면 내가 부단히도 신경 쓴 일들에 대해 왜 그렇게까지 했던가 하면서 좀 진정이 된다. 다른 사람도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공감이 되었다. 나 자신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일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장기하처럼 나도 책을 읽는 속도가 남들에 비해 상당히 느리다. 그래서 나 자신도 답답할 때가 있고, 왜 이렇게 느리지 하고 의문을 제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느려도 꾸준히 읽는다. 틈이 나면 책을 읽는다. 그러니까 이 지점에서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책 읽는 게 느리면 어때, 상관없는 거 아닌가?' 하고.
차가운 맥주와 잘 어울리는 글들
장기하의 음악을 즐겨 듣는 친구가 먼저 이 책을 읽어보고는, "책 읽다 보니까 이거 딱 너 같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하면서 내게 빌려줬다. 처음에는 '장기하 산문집이라고?' 하면서 의아해하면서, 책장 한 구석에 꽂아두었다. 두세 달이 지난 어느 가을밤에 심심한 마음을 채우려고 홀로 차가운 맥주를 마시다가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차가운 맥주와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가볍고 경쾌하게 쓰인 문장들은 쉽게 읽혔다. 안경과 왼손에서 시작해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자신만의 주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동의를 구하려고 한다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로, 나는 이렇습니다 하는 기조로 이야기를 해나간다. 그날 나는 맥주를 마시는 내내 이 책을 읽었고, 다 마시고서도 한동안 책을 읽다가 잠에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하루하루가 이상하게 빠르게 흘러갔고, 해를 넘기고 나서야 어제 이 책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잘 읽히는 글이 읽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잘 읽히는 글을 쓰기란 어렵다. 마찬가지로 내 호흡에 맞고 잘 읽히는 책을 찾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취향이든, 생각이든, 문장의 느낌이든, 말투든, 주제든 많은 것들의 조합이 적어도 일정 부분 교집합을 이루어내야 잘 읽힌다. 물론 잘 읽히는 책들만 찾아서 읽는 것은 아니다. 유독 그런 글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역시 맥주도 함께.
자유와 기다림의 시간
여러 군데 포스트잇을 붙여가면서 공감해가며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자유의 그늘>이라는 부제의 글은 더 마음에 와닿았다. 내가 느껴오던 것들이 그대로 표현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스물 한 살 때부터는 하고 싶은 것이 음악밖에 없었다. 취직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회사든, 매일 출근을 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따라서 취업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다."
"... 내가 열심히 구축해온 자유로운 삶이 가진 그늘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막연함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산다. 그런데 이것은 달리 말하면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한다. ...... 그러니까 어찌 보면 나는 잠에서 깨는 순간 출근을 하는 셈이다. 정신이 들자마자 '너는 무엇을 하고 싶냐'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나 자신은 그리 자주 대답해주지 않는다. 대답을 듣더라도 불명확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뾰족한 수 없이 하루를 지나 보내는 일에 익숙해져야한다. 너무 실망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크게 좌절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하루의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퇴근해야한다. 그런데 이 퇴근이라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정해진 장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뇌만을 이용해 내 뇌를 퇴근시켜야 한다. 그것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나 역시 아직 연구하는 중이다."
'하루'라는 시간이 자유롭게 주어졌을 때 느끼게 되는 막연함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이 막연함은 외로움을 동반한다. 운이 안 좋으면 불안함도 함께 찾아온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은 스스로 룰을 만들어 지킨다. 아침에는 몇 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언제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이런 것들을 정해둔다. 그 편이 마음이 편하다. 나도 자유로운 시간을 완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아직까지는 조금 그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일을 그만두고 그나마 매일같이 일정하게 해오던 일 조차도 없어졌을 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그래서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건데 하고 물었을 때,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그것만큼 불안하고 답답한 것이 없다. 분명히 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하기 위해서 일을 그만두었는데, 그래서 뭐냐고 물으면 답을 해주지 않는 것이다. 사실 답을 안다. 그럴 땐 그냥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면 어느 날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 그때는 또 그걸 하면 된다. 하다 보면 또 뭔가 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기다림이 무섭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막연함은 커지고, 두려움과 불안함도 커진다. 외로움은 말할 것도 없다. 아무도 그 곁을 함께해주지는 않는다. 그 시간의 무게는 온전히 내 몫이다. 그 무게를 견디고 기다리면, 갑자기 머릿속에 무언가 띡 하고 떠오른다. 그 순간이 정말 경쾌하다. 그 순간을 알게 되면, 자유로운 삶에 주어지는 그늘쯤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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