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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 «상관없는 거 아닌가?», 2부 - 밤

by 한낮의꿈 2022.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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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커피>가 잃은 것, 유명세의 대가

이 책에서 후반부에 속하는 밤 파트의 첫 이야기인 '<싸구려 커피>가 잃은 것'은 유명세에 대한 이야기다. 장기하가 가수로 유명세를 얻기 전 클럽 라이브 공연에서 불렀던 <싸구려 커피>와 미디어에 점차 노출되면서 유명세를 얻게 되고 방송화면 상에서 불렀던 <싸구려 커피>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유명세를 얻거나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이름을 알리는 것이 곧 성공의 출발점이 되고, 소수가 아닌 다수의 사람의 머릿속에 기억되기 시작한다. 장기하는 그 현상의 역설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가치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p. 153)

무명이라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이 나지 않았고, 그만큼 신뢰나 명망이 쌓인 것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 사람의 실력이 낮다거나 그 사람의 작업 결과가 나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따져보면, 유명해진 사람이 그럴만한 사연이 있는 것 아닐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합당한 평가와 인식과 고정관념이 생겼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기준점으로부터 유명인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무명인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특유의 신선함을 유명한 사람에게서는 얻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유명함에 대한 대가일까?

일반인으로서, 유명한 사람들의 명망이 부러워질 때가 많다. 그리고 유명해지려면 하고 생각해보면, 그 벽이 터무니없이 높아 보인다. 완전히 다른 세계인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신선함을 무기로 나의 시도를 소수든 다수든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기대치 없이 받는 순수한 반응들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유명하다고 허세를 부릴 필요도 없고, 무명이라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따라서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된다. 그리고 그것을 공유하고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다.

시대를 앞서간 명곡, 그리고 예술의 역할

인류가 매일같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 더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것에 대해 시대를 앞서간 명곡에 비유한다. 시대를 앞섰다는 말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점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중에서 가장 최전선에 있다는 믿음 아래서 나오는 말이다. 장기하는 그 지점에 대해서 이렇게 자문한다.

"사람들은 왜 자신이 이전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모두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이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걸까?"(p. 179)


이 질문의 대답으로,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인생에 대해서 또 하나의 플러스를 획득했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그런 믿을 가지는 것 아닐까 하고 결론짓는다. 내 의견을 더해보자면, 일종의 착시 효과 같은 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 비참해진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희망이고 낙관이 필요하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 다 괜찮을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비참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해도 꿋꿋하게 해 나가는 것이다. 현미경 같은 것으로 인생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어려워지므로.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낙관을 유지하면서도 종종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예술이 종종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다. 문학과 음악, 미술과 같은 것들을 감상하다 보면, 보려고 하지 않았던 현실을 보게 된다. 그럼으로써, 제 위치를 찾게 된다. 균형감각을 되살려준다. 한쪽으로만 기운 채로 살아갈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러다가는 어느 순간 세게 고꾸라질 수도 있다.

망망대해 위의 서퍼, 잡담 같은 노래 그리고 위로

"나는 다시 한번 망망대해 위의 서퍼를 떠올린다. 대단한 항해를 계획하지 않아도 파도는 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파도를 맞이하고 그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푸른 바다 위를 질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서핑, p232>
"왜냐하면, 나는 다른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음악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을 만드는 것은 늘 나 자신을 위로하는 과정이었다." <다시 잡담을, p252>
"내가 만드는 노래는 일종의 잡담인 것이다. 거기에 담은 나의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아 공명하면, 그는 내 노래에 위로받았다고 느끼는 것이고 말이다. 실제로 나는 지난 십여 년 동안 활동하면서, 음악을 하는 것과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느낀 일이 많다." <다시 잡담을, p255>


이 책에서 장기하는 자신을 성찰하고, 위로하고, 또 희망을 품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한 그의 자세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뒤돌아보고, 위로를 느끼고, 희망을 가지도록 하는 것 같다. 바다 위의 서퍼가 숨을 고르고 파도가 오면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것과 같이, 삶 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혹은 다가오는 것들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의 태도를 배우게 된 것 같다. 그가 노래를 만들 때 취하는 태도, '남을 위로하겠다는 큰 뜻' 보다는 '내 마음 하나만이라도 잘 들여보자는 목표로', '나 자신이라도 잘 위로해주자'는 태도를.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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