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치버에 대해서
존 치버 John Cheever(1912-1982)는 20세기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교외의 체호프 라 불리기까지 하면서 가족, 사랑, 그리고 죄의식에 관한 단편 소설들로 유명하다. 존 치버의 단편들은 대부분이 뉴요커를 통해 발표되었다. 그와 동시대를 살면서 서로 간 친분이 있었던 레이먼드 카버가 우리나라에서 유명세가 높은 것에 비해 존 치버는 그의 작품에 비하면 카버만큼 유명하진 않은 것 같다. 또, 왓샵 가문의 이야기로 미국 중산층의 삶을 그려낸 장편 소설로 전미 소설상을 받고, 대중적인 인기도 얻게 되었다. 그 외에도 불릿파크(1969), 팔코너(1977), 등의 장편을 발표하였고, 1982년 마지막 장편인 '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를 출간하고 같은 해에 사망했다.
존 치버의 일기
존 치버의 일기는 그의 아들인 벤저민 치버가 아버지가 남기고 간 29권의 공책에 쓰인 일기를 다른 가족들의 동의와 생전의 존 치버가 출간 가능성을 시사했던 점을 고려하여 (존 치버의 담당 편집인이었던) 로버트 고틀립에게 편집을 맡겨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주된 내용은 하룻동안 벌어진 일, 시시때때로 느끼는 감정 혹은 기분, 죄의식, 하루 동안의 성과(주로 소설을 얼마나 어느 정도 썼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다녀온 곳, 만난 사람들, 인생에 대한 짧은 메모들 같은 것이다. 일기라고 불리어져야 맞지만, 일반적인 일기와는 매우 다르다. 존 치버의 일기를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일기가 어떻게 이렇게도 멋진 글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존 치버가 일기를 쓰면서 문장을 갈고닦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존 치버의 문장에 대해서
일기를 읽다보면 주옥같은 문장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존 치버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닮고 싶은 욕심마저 생긴다. 짧게 잘 쓰는 법에서도 존 치버의 일기를 일부 발췌해 좋은 본보기로써 소개하고 있는데, 그의 일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다. "... 생각 속에서 피워 올린 이 모든 불, 그리고 작문의 유희가 펼쳐지고 있지요. 타고 있는 물체를 묘사하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나요? 이 글은 찰나에 존재하는 문장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인다는 목적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문장의 리듬에 주목하세요. 어떻게 익숙하고 규칙적인 박자로 자리 잡으려 하는지, 어떻게 치버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지를."
존 치버는 일기를 쓰면서 문장들을 시험해보는 것 같다. 찰나를 어떻게 일기로 바꿀 수 있는지, 인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시선으로 문장으로 표현할지를. 그의 문장들은 아름답다. 몇몇 문장들을 발췌해둔다. "도시의 표면은 모순적이다. 모순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도시의 이런 면이 의지가 될 터이다.",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유쾌하지 못한 잠에 빠져 있다.", "점심을 먹으러 시내에 갔다. 에어컨, 향수와 술냄새, 수석 웨이터의 시중, 극장에서 감도는 분주함과 무게감과 자유로움의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분위기. 시내에서의 멋진 하루였다.", "월요일 오전의 기차보다 더 멋진 것이 있을까?", "잘 쓸 것, 정열적으로 쓸 것, 좀 더 자유롭게 쓸 것, 좀 더 너그러워질 것, 자신에게 좀 더 엄격해질 것, 욕망의 물리적 힘뿐 아니라 그 지배력에 대해서도 인지할 것, 글을 쓸 것, 사랑할 것."
이와 같은 문장들을 읽다보면, 내 문장이 너무나도 초라해 보인다. 말, 단어, 문장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거기에는 표현의 가능성이 있다. 그 사실은 존 치버는 알고 있었고, 일기를 쓸 때에도 문장으로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 것이 틀림없다.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문장의 어휘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얼마나 문장(특히 명사화하여)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보는 것과 느끼는 것 혹은 들은 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감정을 제대로 된 단어들을 나열하여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을 전달할 수 있는지. 소설가들은 문장가들이다. 문장은 연습을 해야만 는다. 부단히 표현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초라한 문장들을 되풀이하게 될 뿐이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곱씹어가면서, 어떻게 문장을 점검해보면 좋을지 한번 생각해보았다. 위의 내용과도 다소 중복되며, '짧게 잘 쓰는 법'에 나왔던 방법들도 소개한다.
- 사물 혹은 장소를 지칭하는 명사들을 충분히 활용하였는가?
- 문장이 속하는 시간을 고려해보았는가?
- 감정이나 느낌을 드러낼 때는 좋다, 재밌다, 맛있다, 멋지다, 아름답다와 같은 통속적인 형용사 표현을 피한다.
- 최대한 자유롭게 쓴 뒤에 고쳐 쓴다.
- 하루는 어떻게 표현 가능한가?
- 내가 보는 것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는가? 단순히 어디였는가 혹은 어떻게 생겼다로 표현할 문제는 아니다.
- 얼마나 멀리서 내가 본 것을 관조하며 표현할 수 있을까?
- 문장 속 리듬은 어떠한가?
- 문장과 문장 사이에 미묘한 의미가 담겨있는가?
- 문장이 의도하지 않은 장면을 드러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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