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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G. 제발트 «아우스터리츠», 시간 밖에 존재한다는 것

by 한낮의꿈 202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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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9일, 눈 많이 옴. 그리고 제발트

2022년 1월 19일 수요일 아침 9시의 하늘은 흐릿하고 어둑하며 가벼운 눈발이 흩날린다. 눈발은 점점 두꺼워지고, 건물의 옥상 외벽에 진한 하얀색 테두리가 만들어진다. 눈발은 시들해졌다 거세지기를 반복한다. 낯익지만 드문 풍경이 펼쳐진다. 오늘처럼 흐릿하고 어둑한 풍경과 유사한 느낌의 기억의 풍경을 그려내는 작가가 있다. 빈프리트 게오르크 제발트다.

아우스터리츠 / W. G. 제발트 / 을유문화사 (원문기준; 2001)

어떻게 진짜 현실을 표현할 수 있을까?

제발트는 1980년대 이후 독일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 중 하나이다. 그 이유는 인간 실존과 되풀이되는 역사적 재앙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그것을 내면적인 서사로 이끌어내면서도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인 시간, 생명, 문명과 인류에 대해 질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발트 특유의 서술 방식은 그가 쓴 모든 글을 인류의 유산으로 만들었다. 제발트는 사진과 그 자신의 산문 여행 기록을 소설화한다. 다시 말해, 사실로 픽션을 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픽션은 진실에 가깝게 느껴진다. 여기서 제발트는 다시 한번 현실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사진과 글을 봉합하면서, 글은 사진을 더 진실성 있게 다가오게 만들고, 사진(보이는 것)은 글의 신빙성을 더한다. 둘은 서로를 편집한다. 사진은 진실을 말하는가? 그것은 곧 현실인가? 글은 어떠한가? 그렇다면 현실이란 것은 무엇이고, 현실을 어떻게 표현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떻게 진짜 현실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표현하려고 했던 오늘 아침 눈 내리는 풍경은 진짜 현실인가? 그것은 누구의 현실인가? 사실적 풍경이며 묘사는 현실을 담아내는데 충실한가? 제발트는 아우스터리츠와 그의 유작들에서 이러한 물음에 대해 답하고 있는 것 같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어딘가에 바로 그 현실이 존재한다고.
(*회색 기울임 스타일 부분은 문광훈 교수의 '시간의 밖에 서다' 논문을 참고했습니다.)

시간 밖에 존재한다는 것

"시간이 돈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 그리고 퇴근과 주말을 앞두고 일을 해야 하는 때 이 말이 피부에 와닿는다. 그 이유는 일하는 것을 좋아하더라도 그 생각 아래 일을 하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함이고, 돈을 벌기 위해 일정 시간을 그 일을 위해 떼어놓는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생각은 연봉과 월급, 그리고 시급이라는 말과도 연관이 있다. 이 단어들은 시간은 곧 돈이 되고, 돈이 곧 시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부터 시간의 개념은 자본주의와 밀착되어 전개되어왔다. 이동과 교통수단을 더 빠르게 만들고, 공정을 체계화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자본주의의 모토이며 그것은 모두 시간을 통제하려는 태도과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현시점에서는 자동화와 가상 머신 그리고 AI가 자본주의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로써 전 세계는 어느 때보다 단일하고 공고해진 시간 체계 안에서 통일성 있게 움직인다. 그 시계는 앞으로 전진하기만 한다. 나는 종종 그 시계의 힘이 너무 강해서 내가 시간에 끌려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제발트는 아우스터리츠의 말을 통해 이러한 근대적인 시간관에 "시간이란 인간의 모든 발명들 중에서 단연 가장 인위적인 것이며, 자신의 축을 자전하는 행성들과의 연관성에서 보면 어떤 계산보다도 훨씬 더 자의적인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근대적인 시간관에 반하는 시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것은 자의적으로 계산되고, 수량화되고, 직선적이고 균등하게 진전하는 시간의 권위에 저항하여 "소용돌이 속에서 움직이고 정체와 돌연한 흐름에 의해 결정되며, 지속적으로 변하는 형태로 되돌아와서 어디로 향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크기에 의해 발전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시간 밖에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간이 흐르지 않고, 흘러가지 않아서" 스스로 시간 뒤로 혹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시간의 무게감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1분이 1시간 같을 수 있고, 1시간이 1초 같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내 안쪽에서 흘러가는 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시계라기보다는 어떤 내적인 움직임과 리듬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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